
이 소설은 작가의 바람대로 지극한 사랑에 대한 글이다. 가족(그것이 5.18의 아픔인가요..) 을 떠나보낸 작가는, 온기가 사라진 복도식 아파트, 어느 창백한 얼굴의 환자의 손가락이 찔리고 있는 병실, 태산처럼 휘몰아치는 눈보라에 덮힌 제주 어느 산 중턱, 끝없이 바닥을 밀었다 쓸었다 반복하는 바닷가, 세월의 슬픔을 지고 있는 우듬지가 잘린 나무가 우두커니 놓여있는 작업실,이불 아래에 실톱이 놓여있는 차가운 방 안에 있다.
그곳에서 제주4.3 속으로 몽롱하게 빠져든다.
몇 천구가 쌓였을 지 모르는 사체가 입구를 가로막은 탄갱 속에서 이유없이 자유를 박탁당한 오빠와 작별하지 못한 동생의 사랑이 있다.
눈보라 날리는 산턱으로 달리는 버스에서 예고된 작별. 누구와 작별하는 것일까.
살고 싶지 않았던 경하와 잊을 수 없는 기억을 필름으로 남기려했던 인선.
끝내 찾지 못한 오빠의 발자취가 담긴 기사를 가지런히 모으던 인선의 어머니는 제주4.3을 가슴에 깊이 간직한 유족들의 아픔의 단편을 보여준다. 유족회를 꾸리며 유골을 발굴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진행중이다. 작별할 수 없는 가족들의 마음은 70년동안 이내 사회의 관심밖에 있었다.
짝을 이루며 지냈던 아미와 아마는 과거에는 함께 있었지만 아미는 먼저 죽고 묻힌다. 아미는 인선의 어머니, 아마는 인선의 아바타와 같은 존재이다. 아마를 살리기 위해 제주로 가라는 인선의 말속에서 그녀는 죽음을 이미 직감하고, 제주에 가서 인선이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경하에게 알리고싶은 간절함이 묻어난다. 아마는 인선이 병원으로 떠난 뒤로 돌봄을 받지 못해 죽게 되는데 이를 경하는 거두어 준다. 그러나 다시금 검은 그림자로 벽 위를 날아다니며 나타나게 되는데 이는, 작별하지 않는 모습을 경하에게 보여준다.
있었던 자와 죽은 자는 찾을 수 없고, 만남과 이별은 교차하며, 삶과 죽음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제주4.3은 아직도 진행중인 것 같다.
그 누구도 작별할 수 없었고, 작별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작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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